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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에 태어난 우리 할아버지는 혼자서 집도 짓고 농사도 하고 짚신도 새기고 새끼줄, 가마때기도 짜고 물고기도 잡고 구들장도 깔고 손주 장난감까지 직접 다 만들었다. 고단한 삶이었다. 휴가도 없고 휴일도 없다. 눈만 뜨면 뭔가를 해야만 일상이 유지되는 삶. 고치는 속도만큼 고장이 나는 자전거처럼.

인생에는 귀찮은 일이 가득한데 누군가가 해야하는데(어릴 때는 엄마 아빠가 대신 해준다) 아무도 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해야한다. 

 

1. 귀찮은 일 : 밥먹고 똥싸고 자고 나가서 운전하고 일하고, 병원가고, 동사무소가고 은행가고 택배 보내고, 인터넷쇼핑하고, 장보고 전화받고 서류작성하고...배달하고

2. 어려운 일 : 집짓고, 수술하고, 공소장 쓰고, 자동차 수리하고, 맛있는 음식 만들고

(여기서 대전제는 어려운 일을 어렵게 해내면 그건 직업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남들에게는 어려운 일을 나에게는 쉽게 해내야 그게 직업이 된다. 그러면 쉽다는 기준은 어느 정도인가? 그것은 멀티태스킹이 가능해야 한다. 예를 들면 맹장수술을 하면서 라디오 켜놓고 간호사랑 잡담하면서도 능숙하게 잘하면 그게 쉽게 하는 거다. 뭔가를 집중해서 해야만 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직업이 아니다.)

인간의 일상은 대부분이 귀찮을 일 혹은 어려운 일들로 가득하다. 귀찮은 일이란? 살다보면 귀찮은 일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게 생명체의 본질이다. 엔트로피의 법칙을 거스르며 생명체를 유지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밥 안 먹고 살 수 있어? 잠 안 자고 생명체 유지가 돼?

인간의 삶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귀찮은 일들이다. 밥하고 설겆이하고 잠 자고 씻고... 이런 유지보수하는데 귀찮은 일을 제외하면 정작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안 된다. 그래서 한 틈이라도 더 확보하려고 배달음식을 시키고, 외식을 하고, 아파트청약을 하고(안 그러면 내가 집을 지어야한다) 비서와 운전기사를 고용하는 것이다. 최대한 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 와중에 어려운 일도 있다. 골절이 생기면? 이거 어떡하냐? 붙여야지. 어려운 일이다. 집 지붕이 무너지면? 고쳐야지. 어렵다. 우리가 사람 불러야해. 라는 생각이 들면 어려운 일이다. 체질감별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게 직업의 본질이다. 귀찮은 일 혹은 어려운 일. 당연히 후자가 더 인기있고 경쟁이 치열하다. 대학이 존재하는 것도 귀족들이 귀찮거나 어려운 일을 누군가에게 시켜서 부려먹으려고 만든 목적이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귀찮은 일을 하기 싫으면 남들이 잘 못하는 어려운 일을 해야 한다. 어려운 일(백내장수술)을 하지 못하면 귀찮은 일(쿠팡배달)을 하면서 먹고 살아야한다. 우리가 공부하고 운동하고 건강검진받고 하는 것도 결국에는 <나중에 덜 귀찮아지려고> <내 인생을 귀찮은 일만 하다가 다 보내버리는 참사>를 피하기 위해 하는 행위들이다.

결국 인생이란 귀찮을 일이 산더미같이 쌓인 곳인데 그나마 그 중에 시간의 틈새를 찾아내서 재미난 걸 찾아서 하는 게 인생이다. 그래서 몇년에 한번 있는 가족해외여행에 '전 안 갈께요.'라는 짓을 하면 안된다. 사춘기라도 그런 짓거리는 허용하면 안된다. 재미난 것들로 최대한 인생의 이벤트를 풍성하게 채워야 한다.

직업의 실체가 뭔지 아니? 귀찮을 일이야. 직업의 본질이 귀찮은 일이라구. 잊지 마라.

 

그런데 귀찮지 않고 내가 즐기는 일로 직업을 삼으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대개 귀찮지 않은 일(예를 들면 노래 부르기, 게임하기, 술먹기, 여행가기,  골프치기, 춤추기)로 직업을 삼는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탑클라스라는 반증이다. 장삼이사는 귀찮은 일 혹은 어려운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벽돌나르기, 배달하기, 진료보기, 변호하기, 출근하기, 전화받기, 서류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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