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국내 코스피가 5.5% 이상 폭락하는 역대 최악의 블랙먼데이를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 전격시행으로 전세계가 패닉셀에 빠진 가운데 김씨가 잘밤에 호작질하다가 영웅문을 켜놓고 아무 생각없이 서버 저장버튼을 클릭했다. 최근 조짐이 좋지 않았다. 정부의 NXT 개장 이후 증권사들 서버 점검이 잦아졌고 버튼을 클릭하는 순간 평소와 다름을 직감했다.
취소할까 말까 하다가 어떻게든 업로드는 되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에 자리를 뜨고나서 30분 뒤 돌아와보니 팝업창이 하나 떠 있었다.
"통신 서버와의 접속이 해제되었습니다. 재접속을 하시겠습니까?"
팝업창 너머로 로딩바는 2/3 지점에서 멈춰있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재접속을 하자 텅 빈 화면이 김씨를 반겨주었다. 서둘러 서버 설정 내려받기를 실행하자 이번에는 또 다른 팝업창이 반겨주었다.
"ZIP.null"
그리고 나타난 0600 화면에는 20년전 즈음에 영웅문을 처음 깔았을 때 보았던 빨강 파랑 캔들바와 조잡한 이평선들이 보였다. 화면을 보는 순간 온몸의 피가 머리로 달아오르는 느낌, 볼이 파르르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옆에서 누가 말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심장이 점점 쿵쿵쿵쿵 뛰기 시작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0600 화면에서 우클릭을 해서 차트툴 적용/관리탭을 눌러보았다.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정말 단 하나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내가 10여년간 저장해놓은 챠트툴세팅 수십개가 클릭 한방에 날아간 것이다. 시계를 봤다. 10시 7분.
오늘 밤 잠이 올까? 안 올 것 같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0606 화면을 켜봤다. 0602 화면도 켜봤다. 수식관리자에도 들어가봤다. 이럴수가! 모두 살아 있었다. 0600 챠트툴만 날라간 것이다. 최근 김씨는 0606 화면으로 중심으로 수식관리를 하고 있었다.
천만다행이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최근 NXT 개장으로 연결이 어려울 줄 알았는데 한방에 상담원과 연결되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수화기 너머로 "아..... 네.'라는 탄식음이 들려왔다. 원격으로 한번 복구를 해보겠다고 한다.
상담원은 적게 약속하기를 시전했다. "날아간 것 같습니다. 서버에서 내려받기를 해서 받으시면 날라가는게 맞는데 혹시나 임시 저장화면을 복구하면 살아나는 경우가 있으니 한번 시도해보겠습니다."
밖에 환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직원이 문을 두드렸다. 초조해졌다. 상담원에게 전화를 끊고 원격해줄 수 있느냐고 물으니 원격제어할 때는 전화가 끊어지면 해줄 수가 없다고 했다. 다시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과연 복구가 될까? 뭘로 살린다는거지?
3시간이 흘렀다. 아침의 그 상담원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원격으로 넘겨진 마우스는 현란하게 움직였지만 점점 움직임이 느려졌다. 느려진 속도만큼 내 마음속 희망도 쪼그라들고 있었다. 상담원은 영웅문 폴더 안에 있는 가장 최근 폴더(이름은 #sdFAF6 이런식으로 만들어져잇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최근에 저장된 파일 3개를 삭제하고 3일전 파일의 확장자를 .DAT로 바꿨다.
그리고 다시 접속을 시도하니 상담원이 밝은 목소리로 "고객님 한번 살펴보시지요." 마우스의 권한을 건네줬다.
그대로였다. 어젯밤 날아간 상태 그대로였다.
"아, 이거 복구 안된다는 거죠? 네. 알겠습니다."
상담원은 차분했다. 나도 화내지 않았다. 내 잘못은 없지만, 사실 증권사 서버 잘못이지만 나의 백업루틴이 잘못된 것이었다. 서버저장하기 전에 본인 하드에 먼저 저장했어야했다.
"이것은 실패인가? 과정인가? 나는 무엇을 배워야하는 것인가?"
전화를 끊고나서 지난 수년간의 기억을 더듬어 노가다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눈알이 빠지는 줄 알았다. 눈물이 나오는 것 같았다. 다행히 0607 화면에 일부 수식을 옮겨놓은 것을 토대로 최근에 가장 많이 사용하던 차트툴 3개를 복구했다. 나머지는 포기했다. 기억도 안 나고. 눈알도 빠질 것 같고.
그리고 김씨는 '매달 7일'을 <백업의 날>로 선포하고 해당일이 되면 현대사회에서 백업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경각심을 가져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사회부>